부활절 이야기

 

교회의 어떤 젊은 친구가 "장로님 왜 부활절은 크리스마스 같이 매년 같은 날에 지키지 않고 복잡하게 매년 바뀝니가 한 일이 있다. 정말 그렇다.

어떻든 나는 우리말의 부활절이란 단어를 영어의 Easter보다 훨씬 좋아 한다. 원래 부활절도 크리스마스나 제성절(諸聖節 Halloween) 같이 이교도의 명절에 기독교의 것이 보태어져 생긴 것이다. Easter란 단어는 앵글로 색슨들의 봄의 여신 Eostre(혹은 Ostera)에서 나온 단어이다. 봄이 오는 춘절(春分)은 옛날부터 세계적으로 지켜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이 지키는 Easter는 기독교의 제일 중요한 명절로 예수님이 십자가상에 죽으시고 장사 지낸 후 3일째 부활하신 것을 축하하는 날이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부활은 십자가 없이는 있을 수가 없다. 십자가는 곧 유월절 양의 희생을 의미한다. 그래서 Easter란 유대인들의 Pascha(유월절)와 같은 의미에서 출발하였다. 실제 초대교회들에서는 부활절을 흔히 Pascha라고 불렀으나 유대인들의 명절과 동일하게 불리어 혼돈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후일 Easter로 불리어 졌다.

기독교가 처음 포교되어질 때에는 박해를 받고 숨어서 믿어야 할 경우가 많아서 이교도들의 명절의 때에 기독교의 명절을 지킬 경우는 남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을 것이다.

초대교회 때에는 부활절도 곳 곳 마다 다른 날에 지켜지고 있었다. 특히 소아시아 지방은 예배소에서 오랜 동안 생존하여 있든 사도 요한의 가르침에 따라 유월절 양되신 부활의 주님을 유대력으로 정월인 Nissan월 14일에 시작하는 유월절(무교절) 때에 지켰고 그의 제자인 Polycarp도 그렇게 가르치고 지켜 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들은 베드로와 바울의 가르침대로 부활절을 니산월 14일이 지난 주일날에 지켜왔다. 그래서 유롭과 중동 아프리카등의 교회들과 소아시아 지방의 교회들(예배소, 골로새, 서머나, 라오디게아 등)과는 의견의 차이가 있었다. 만약 니산월 14일을 지킨다면 유대인들과 같은 유월절 기간 중에 부활절이 되지만 부활한 날이 주일이 되기는 힘든다.

문제는 유대력은 음력이고 그 당시 사용하든 Julian calendar는 양력이었다. 달이 지구 1회전 할려면 29.5일이 된다. 그래서 유대력의 한 달은 29일 혹은 30일로 된다. 그러나 1년은 354일로서 태양력의365일과는 매년 11일의 차이가 생기게 되어 음력으로 계산하면 계절의 정확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윤달을 19년에 7회 즉 2-3년마다 한번씩 두어서 계절을 맞추어간다. 그들의 윤달은 우리들 음력 윤달과 달리 언제나 마지막 달인 Adar월에 있고 "두번째 아달월"이라고 부른다. 그런 결과로 첫째달인 니산월 14일에 시작하는 유월절은 매년 양력으로는 보면 다른 날에 있게되고 또한 금요일에 반드시 오는 것도 아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이 금요일에 그리고 부활은 항상 주일날이 되기는 어렵다. 그 때문에 초대교회에서는 부활절 문제 때문에 혼돈이 있었다.


초대교회 때의 유월절에 관한 기록들을 인용해 본다.

"Servilius Paulus가 아시아(현재 터키의 소아시아)의 총독이었을 때, Sagarius가 순교한 때에 라오디게아에서 부활절의 날짜 때문에 큰 논쟁이 일어났다." (Melito, c.170)

"은총을 입은 Polycarp (사도 요한의 제자로 서머나 교회의 감독으로 있다가 노년에 화형으로 순교된 초대교회 교부)이 로마에 Anicetus(로마교회의 감독)를 방문하였을 때에(c. 155) .....그들은 단번에 서로 지극히 친밀하여졌다. 그들 사이에 이 문제(부활절 날) 때문에 어떤 논쟁도 일어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다. Anicetus는 폴리갑이 주님의 제자인 사도 요한 때부터 다른 제자들과 다르게 지켜오는 그의 관습을 포기하라고 설득 할 수가 없었다."(Irenaeus,c. 180)

Pascha란 용어 대신 Easter란 단어 사용은 주후 325년에 콘스탄틴 대제 때 있었든 Nicean (현재의 터키 Iznick)회의 때부터 결정되었고 날짜는 양력으로 춘분이 지나고 오는 만월이 가장 가까운 다음 주일로 정하여졌다. 그래서 부활절은 3월 22일에서 4월 25일 사이의 어느 날에 있게되고 간혹 음력에 따르는 유대인들의 유월절과 같은 날이 되기도 한다.



작년 부활절 전날 저녁에 가진 Boston의 한 미국 감리교회에서 집회 중에 둘째 외손자의 유아 세례식이 있었다.
이 세례를 위하여 4시간 달려 가서 "하필 저녁 집회에서 세례가 뭐꼬?" 집 사람보고 투덜 거리면서 참석 했지만 미안하게도 그 집회는 지극히 은혜스러웠다.
그들은 나에게 6사람이 중간 중간 돌아가면서 봉독하는 성경을 한장 읽게 하였다.

그 예배를 위하여 목사님은 우리 딸에게 어머님이 좋아하시든 찬송가가 무어냐고 물었고, 우리 딸은 어릴 때 가슴에 안겨 항상 듣던 "나의 사랑하는 책...."이 생각나서 그렇게 전하였다.

목사님은 그 저녁 예배의 주제를 그 찬송에서 찾아내고, 찬송 한절 한절 사이 사이에 부활의 멧세이지를 찬송가와 조화시키면서 전하였다. 나는 그 때 까지도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새기는 알고 (지금도 가슴 아련하게 그 새벽 송과 그 밤들이 생각나지만) 부활절은 새벽 기도 외에는 참석한 일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초대 교부들이 기록한 그 때의 부활절의 뜻을 다시 본다.

"우리들은 주의 날에 금식을 하거나 예배에 꿇어앉는(우리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이 법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또 부활절부터 오순절까지 같은 특별한 은혜로 즐거워한다." (Tertullian, c. 211)

지금도 그렇지만 초대교회에서는 부활절 전에 하루서 며칠까지 흔히 금식을 하였다. 사순절 (Ash Wednesday부터 40일간) 동안 이스람의 라마단 같이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끝으로 (믿지 아니하는 남편들이) 부활절의 제전으로 왼 밤을 비우는 아내를 걱정하지 않고 견디어 줄 것인가?' (Tertullian, c.205)

"당신들의 금식을 주일의 첫날의 동이 틀 때 끝내십시오. 이날은 주의 날입니다. 저녁부터 첫닭이 울 때까지 깨어 있으십시오; 조심하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경배하십시오. 당신이 왼 밤을 앉아 있을 동안에 율법과 예언서와 그리고 시편들을 닭이 울 때까지 읽으십시오. 세례를 받기를 결심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복음서를 읽으십시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들의 구원을 도울 말씀들을 전하고.....그 순간부터(닭이 우는) 당신들의 금식을 끝내며 즐거워하십시오!! 축제를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음에서 살아나신 부활의 증인이 되십시오.!!" (Apostolic Constitutions, compiled c. 390)

보통 부활절은 전날 저녁부터 밤새우며 새벽닭이 울 때까지 같이 교회에 모여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새벽닭이 울 때부터는 금식을 마치고 즐기고 기뻐하며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축하하라고 초대교회에서는 가르쳤다. (Tertullian c.211, Origen c.248, Apostolic Constitution c. 390 etc.)

초대교회는 성탄보다 부활절을 기쁨으로 지켰다. 지금도 부활 전야에 흔히 금식하고 철야 예배를 보는 교회도 있다.

부활절은 1년에 한번 지키지만 같은 뜻으로 부활의 기쁨과 축복은 우리들은 매 주일 마다 가진다.

채색한 계란 찾기 혹은 계란 굴리기 등의 풍속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로마로부터 중국에 이르기까지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을 기념하는 춘절에 흔히 행하였다 한다. 기독교에서는 새 생명의 인간으로 부활하는 기념의 상징으로 행하여지고 있다. 채색 계란에 얽힌 폴란드 사람들의 전설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자비를 빌면서 십자가 가까이 있는 군인들에게 계란을 나누어 줄 때 떨어진 눈물이 계란들 위에 오색 영롱한 색깔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Easter Bunny (귀여운 토끼)의 풍속도 어디서 왔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봄의 토끼는 생산을 상징하고 있으며 원래는 Eoster 여신의 지상의 대리인이라 생각하였다. 부활절을 지키는 우리들 풍속에서는 토끼가 계란을 숨기는 일을 한다(?)고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