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며 살 수 있었으면....

남양만에서 온 김진홍 목사님을 안지는 20여년이 된다. 처음 출옥한 뒤 방미하였을 때 몇일 우리집에서 있은 일로 알게 되어서 전에는 미국 오면 종 종 만났다. 우리 집 사람이 “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고 청계천에 들어 갈 수 있었어요?’ 하고 감탄을 하여서인지, 이 부침성 좋은 김 목사님은 우리집 사람을 ‘누님’이라고 농담 삼아 불렀다.

한번은 대화 중에 김 목사님이 “장로님은 별로 고생하신 일이 없지요?” 하고 물은 일이 있다. 불쑥 한다는 소리가 “대학은 고학 비슷하게 하였지요” 하였다. 그러나 곧 나를 우습게 알 것 같았다. 옛날 대학 때 좋아하든 한 여학생이 내가 고학 한다고 하였더니 “사람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야 한다”는 묘한 말을 남기고 떠나간 일이 생각났다.
아무리 둘러 보아도 자랑 할 것이 없었고, 또 같은 대구 출신이라서 알듯하여 “그래도, 우리 당숙은 한 분이 교수인데…”하고 조금 과장되게 소개 하였다.

그랬더니 잘 안다면서 이 분 한다는 소리가 “장로님은 참 좋은 집안이시네요, 나는 우리 아버지까지 3대째 머슴 사리를 하든 집안입니다”
늙어가는 이 장로 얼굴에 침 뱉자고 하신 말씀은 아니겠지만, 속이 조금 매쓱하여 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예수 오래 믿어 노름쟁이 같이 얼굴 관리를 잘 한 덕으로 표정은 안 변했지만 ……...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 지니라" (고후 10: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든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신8:2-3)

항상 나는 과장을 하는 버릇이 있다. 내 신앙이 실제 보다도 더 깊은 믿음인 것을 광고하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지난 날을 생각해보면 창피하여 얼굴을 들 수 없다. 일본 “가미다나” 앞에서 복 달라고 부모님 모르게 기도한 일이며, 동네 과수원에 도둑질 하러 들어간 일…6 25때 미군부대 있을 때 빼 돌린 맥주를 팔아 먹든 일, 등등…. 그 후도 나이에 걸맞게, 고개 들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한 인생이지 않았던가?

나는 타고난 거짓말 쟁이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성경말씀에도 인간은 다 그렇다는데(시116:11) 뭘...이라고 할수 있는 속된 근성도 구비하고 있다.그러면서도 나는 다른 사람에게 자랑을 하여야 속이 편한, 현대식 말로 속물이다. 내 것을 자랑 할 수 없으면, 가족이나 집안이나 집안에 키우는 개나, 하다 못해 내가 공부 할 동안 잠시 지난 대도시 대구 출신인 것이라도 자랑해야 한다. 요사이는 우리 손자들이 얼마나 천재인지를 광고하는 맛으로 산다. 이런 것으로 Identify(한국 말로 정체성이라든가?) 라도 해야 하는 그 밑 바탕에 깔린 지독한 저열감 (Inferiority Complex)을 바라 보면 진저리가 처진다.

나이가 들어도, 나는 나 된 본전을 모르는 인간인 것 같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19:21)
그렇게 보면 내 본전은 "무"인 것을 알면서도 어찌 할 수가 없다.


이 허망한 세상, 빨리 지나가고 괴로운 인생, 어서 지나가서 그저 천국만이 오면…. 하는 식으로 믿었든 신앙 덕인지, 나는 도대체 현재를 만족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래서 항상 “내 인생”을 살 날을 기다리는 인생을 살고 있다. 대학이 끝나면 내 인생을 살리라. 결혼을 하면….. 얘들이 자라고 나면….. 얘들이 결혼을 하고 나면…..이젠 은퇴하면 내 인생을 살리라 하면서 기다리다가 아직도 나는 내 인생을 살지 못하였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은 우리 집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집에서 만하탄에 저녁에 갈 일이 있으면 나는 아침부터, Traffic이 없을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한다. 집 사람은 “길에 나서고 길이 막히면 그 때 걱정을 해요” 하고 만사 태평이다. 집을 나서면서 또 다시 파킹 할 자리는 있을지 모르겠다. 하면 가서 보고 없으면 그 때 걱정하지 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지금부터 걱정을 하느냐고 야단을 친다. 감히 대꾸는 못하고 속으로는 그래도 사전에 준비를 하여야지 하고 시무룩해진다.

Pasternak가 한 말이 생각난다. "인생이란 살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란 곧 사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 집사람은 힘들게 얘들을 혼자 손으로 키우면서도 그것을 즐기고, 어렵고 고생스럽든 셋방사리를 할 때도, 그대로 혼자서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평생을 내 인생을 상상하며 기다리고 있을 동안에 기분 나쁘게 집 사람은 혼자 그의 인생을 즐기며 살아 온듯하다. 나는 무슨 일이든지 일어나기 전에 먼저 부정적으로 자꾸 생각을 하는데 집사람은 그 반대이다. 긍정적인 생활이란 곧 감사하는 생활인데…...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사실 천국이란 “내 마음 속에” “우리 속에” 있는 것이고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아닌가? 이 땅에서 천국생활을 못한다는 것은 내 속에 예수를 못 모신 것이고, 예수님을 못 모신 사람이 영원한 천국에 어찌 들어갈 수 있겠는가. 알기는 잘 안다.


좀 오래된 보고이지만 재미 있는 보고가 있다. 1989년 JAMA(미국의학협회지)에 실린 기사로 North Carolina주의 Duke대학병원 정신과 교수인 Redford B. Williams, Jr. M.D.의 연구보고서다.
사람은 그 성격상 A type의 성격과 B type의 성격으로 구분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 과학적 근거도 없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혈액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A 타입의 성격으로 이는 “의심 많고, 만사에 적대적인” 성격을 말하고 이런 삶들은 심장마비와 중풍 등으로 사망 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Williams박사에 의하면 A형 성격이란 세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다른 사람의 동기를 냉소적으로 의심한다 (즉 모든 사람은 앞서 가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둘째는 자주 성을 낸다. 셋째는 상대방의 감정을 생각하지 않고 도전적으로 적대감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승강기 앞에서 기다리는데 윗층에서 에레베이트가 자주 서면 바로 어떤 사람이 일부러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또 슈퍼에서 급행 줄에 서서 기다리는데 어떤 사람이 5개 이하로 표시된 줄에서 더 많은 양의 것을 갖고 있으면, 바로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다.

법대생 118명을 성격 조사를 하고 법조인이 되고 25 년 뒤에 보았다. 처음 검사 할 때 높은 적대감을 가진 사람들은 낮은 사람 보다도 젊은 나이에4.2배나 많이 사망한 것을 발견하였다. 검사표에서 가장 높은 A 타입의 사람은 5.5배나 죽을 확률이 높았다. 그 다음에 255명의 의사를 의과대학 때 검사하고 1877명의 Western Electric 고용인들을 그들의 취직 때 검사한 후 25년 을 관찰 한 결과도 같았다. 특히 젊은 나이에 심장병이나 중풍 등으로 죽는 율이 높았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인생은 아름답다'는 긍정적인 생활일 때에야 내가 감사하고, 가정이 감사하고 그리고 항상 기쁨이 있는 생활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너희 모든 짐을 감당 하시겠다는 예수님께 내 모두를 맞겨버리고 푸근한 긍정적인 삶을 가진다는 것은 내세 뿐만 아니고 현세에도 장수하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다.

흔히 타고 난 성격이라 말 하지만, 그 말 자체가 하나님께 원망을 보내는 항의 섞인 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다.너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