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국 |  | 04.04.24 10:02 

얼렁뚱땅하는 말이라거나, 두 가지 뜻이 있는 말이라거나, 악의 없는 거짓 말이라거나 무엇이라 하여도 좋다. 이런 말들은 어떻게 말하든지 거짓말임에는 틀림 없다. 또 거짓말은 우리 모두가 아는 데로 옳지 않고 나쁘다는 것은 틀림없다.

단테의 신곡에도 거짓말쟁이는 지독하고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지옥 편에는 이런 사람들은 8째 지옥에 던져지는 것으로 되어있다.

성경의 기록에 비쳐보면 거짓말은 신자의 금기 사항 중 하나로 생각할 수 있다. 구약시대에는 거짓말 안하는 것이 십일조 하는 것 보다도 더 중요시 된 것 같다. 그래서 십계명 중 한 계명이 거짓말 하는 것에 관한 것으로 명기되어 있다. 신약에서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가 사도행전에 있다. 이 이야기는, 거짓말의 처벌은 죽음의 형벌임을 암시하는 것 같다.

새벽 닭 울기 전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정한 세 번의 거짓말은 그에게는 뼈아픈 회개를 하게하였다. 이로 인하여 갈릴리의 안개 낀 새벽 바다에서 세 번이나 주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한 이유라고 어떤 주석가는 기록하고 있다.

닭 우는 소리에 깨달은 베드로에게는 회개의 눈물이 있었으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는 회개를 하였다는 기록이 없다.

구약에는 창세기에 아브라함이 그의 아네 사라를 여동생이라고 속이는 이야기가 몇 번 나온다. 사실 사라는 그의 배 다른 여동생으로서 이중적인 의미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당 되지만 성경의 줄거리는 거짓말로 치부하고 있다.

선한 거짓말도 있다. 유대 산모들은 건강하여서 그들이 이르기 전에 출산을 한다는 출애굽기에 기록 된 애굽 산파들이 말한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는 사람을 살리려는 선한 거짓말임을 알 수 있다. 영어에는 White lie라고 한다고 들었다. 한국의 점잖은 분들이 행하는 덕담도 그런 종류인 것 같다.

“고모님 전번 뵈었을 때보다 도로 젊어지신 것 같습니다’ 라거나 “Susan, 휴가 동안에 체중이 많이 줄고, 어떻게 더 예쁘졌군” 하는 거짓말로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힘찬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무엇이라고 하여도 거짓말의 원천은, 거짓의 조상인 사탄이 에덴동산에서 헤와에게 행한 “죄를 범해도 결코 죽지 않는다” 는 거짓말이다. 그래서, 거짓말은 사탄의 행위라고 주장하며, 자기는 거짓말을 하는 죄를 범치 않으려고 하는 사람임을 강조하는 분들도 세상에는 많이 있다.

Kansas State College의 Rod Vogl의 박사과정 연구에서 보면 사람들은38%의 경우에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또 후 일에 기억하는 사건 중에서 더 열심히 연습하고 계획한 거짓말일수록 나중 까지 더 잘 기억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Univ. Southern California의 연구에서는 20명의 사람들에게 소형 마이크를 부착하여 하루를 지나는 동안에 행하는 거짓말을 조사한 결과 사람들은 하루에 200번 정도의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거짓말 할 때에 얼굴 표정, 눈짓, 몸짓, 목소리 등에서 거짓 말을 할 때에는 잘 관찰하여 보면 틀리는 점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거짓말 탐지기가 사용된다.

그러나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의 연구 대상자는 단지 36%의 사람만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미국 카도릭에서 신부들이 교회의 소년들을 성 추행한 사건으로 몇 백 명의 피해자가 교구들과 신부들을 상대로 고소하여 많은 교구들이 파산에 직면하고 있다. 40년 이상이나 신부로서 그런 짓을 해 오다가 감옥에 같인 한 분은 몇일 전 동성애자들을 증오하는 한 죄수에 의해서 감옥에서 교살 되었다.

그러나 카도릭의 문제는 이들이 젊은 여자나 여자 교인들과의 성 문제는 말들을 하지 않고 있어서 이성의 피해자는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못한다. 일반적인 학자들의 연구에는 어떤 종교나 우리 신교를 포함하여 30%의 지도자가 이런 문제가 있다는 보고가 있다. 이 수치가 인간의 거짓말 확률과 비슷함이 재미있다.

그래서 보통 사회에서는 거짓말을 이 보다(30%) 좀더 하게 되면 “신용 없는 사람”이라 하고 이 보다 너무 적게 하면 “순진하다” 라고 한다.

거짓말도 물론 고의적이고 계산된 사기성인 것과 충동적으로 행하여진 거짓말은 차이가 있다. 또 거짓말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상대가 거짓이 없어야 될 상대일수록 더 정신적인 고통을 받게 된다. 그래서 부부간 혹은 가까운 가족간일수록 거짓말의 피해는 더 심하다. 물론 부모나, 교회나 사회적인 지도자가 상대일 때는 보통 사람 이상으로 실망이 크게 된다.

그래서 우리들은 자녀들에게 거짓말하는 것이 가장 나쁘고 수치스러운 행위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교육시킨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부모의 가르침 보다도 부모님이 행하는 거짓말이나 거짓 행위가 더 중요하게 오랜 동안 그 생애에 영향을 주게 된다고 한다.

거짓말을 하는 부모, 스승, 종교인, 지도자 들이 행하는 거짓말 때문에 후일 자기도 같은 사람으로 자라게 되거나 거짓말 한자에게 대한 지독한 환멸 혹은 정신적인 분열의 원인이 될 수가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현대의 똑똑한 사람들은 정치인의 말이나 장사꾼의 말 혹은 사기꾼의 말들은 거짓말임이 알려져도 듣는 사람의 개인적인 피해가 크지 않은 한 그렇게 심각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인기인의 거짓말인 신상 발언이나, 야바위꾼 같은 직업적인 거짓말쟁이에게 속을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하면서 서로 모여서 거짓말을 행하는 우리들 때문에 오는 정치계와 사회의 부정은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그렇타고 하여도, 거짓말은 인간이 가지는 특징의 하나이다. 사람이 4살이 되고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가 있느냐는 것을 점차 배우게 된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중요한 기술이다. 상대방에게 잘못된 믿음을 주어 자기를 덕되게 하는 기술을 말이다. 그런데도 이 기술을 어릴 때 배울 수 없는 병이 있다. 그것이 Autism (自閉症) 환자이다. 자페증 환자가 정상적인 대인 교제를 할 수 없는 원인 중의 하나가 이 거짓말에 관한 때문이라 한다.

또 다른 문제의 환자는 “반사회적 인격증” (反 社會的 人格症)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양심이 없거나 부족하여 모든 악행에서 아무런 죄의식이 없거나 결핍되어 있는 사람이다. 이들은 때로 언뜻 보기에는 매력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보아 온 유명한 탈옥수나 깡패들에게 선망의 생각과 애정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대 부분 무정하고, 거짓말하기를 쉽게 하고 도둑질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비 사회적 인물들은 우리 보통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문제가 있다.

그들은 가슴 두근거림이나, 불안을 경험하지 않고, 거짓말을 할 때에도 이런 사람들은 냉정할 수 있다. 심지어 거짓말 탐지기도 듣지 않는다. 반대로 양심적인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무관한 일에도 불안과 빠른 심장 박동 그리고 말초 증상으로 거짓말 탐지기에 가짜 양성 반응을 나타낼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 크리스챤은 이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 다 같이 함께 살수 있고 믿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책임이 있다. 그리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고 고백하여야 한다.

우리는 거짓말을 어떻게 하여야 할까?. 전제는 거짓말은 죄악임을 잊지 않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하거나, 자신의 실수나 죄를 감추기 위한 거짓말은 결단코 피해야 한다, 또한 신앙고백에 관한 것은 어떠한 것이라도 거짓을 피해야 한다. 초대교회의 수많은 교부들이 살려주기 위하여 세 번씩이나 되물으면서 크리스챤이 아니라는 고백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그들은 그리스도를 고백하면서 순교의 길로 나아갔다.

생각 해 보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든지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말 할때마다 별로 거짓말이라고 느끼지도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죄악감 없이 교통법규를 어긴다. 우리들이 상습적으로 행하는 속도위반 팈켓을 받을 정도의 속도 위반은 깊이 생각하여 보아야 한다. 특히 내가 보수주의 교인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바쁘다” “피곤하다”는 입에 발린 말들을 하기 전에 정말로 그런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Mark Twain이 평소 한 말이 있다. “진실을 말해야 될지 의문이 있을 때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거짓말을 할 때 보다 훨씬 쉽다”


그날에는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 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 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