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녀 탄생


예수님은 교리를 가르치지 아니하셨다. 오히려 교조주의적인 유대교의 교리 주의자들을 책망하셨다. 그는 교리를 성실히 지킴으로 구원이 오는 것이 아님을 몸소 실천하여 보여주셨다.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가 구원 받은 한 강도는 세례도 받지 않았고 교리공부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알기에는 교리는 가장 간추린 모습의 성경의 의미이다. 그래서 가장 쉽게 진리에 도달 할 수 있는 지름길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런데도 나는 종종 그 교리 대로 믿지 않을 경우가 있다. 교리는 사람들이 간추린 것이기 때문에 성경 같이 온전하지 않다고 스스로 이야기 하면서……

한편 넓은 마음으로, 사도들이 가르쳐 준 신앙고백 대로 믿고 신앙고백을 하는 종파들은 나는 이단이라고 치부 하기를 주저한다.


어릴 때부터 성모 마리아가 동정녀로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하여 낳았다는 사실은 듣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예수님이 왜 처녀 몸에서 남자와 상관 없이 태어나야 하는 지를 알지 못했다.

로마서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은 알지만 로마서5:12부터 기록된 한 사람 아담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아담의 범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도 같은 입장이라는 것은 바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너무 불공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 되기도 했다.
한편 예수님 한 분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고 나도 그와 함께 죽고 또 그와 함께 부활한다는 것이 ....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만 좀 찝찔했다.

언젠가 히브리서를 읽고 있었다. 7장 5절과 10절을 보니 “허리”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용법이 좀 이상하다. “멜기세댁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는 말이다. 허리라니? 원어 성경을 찾아보니 헬라어로 Osphus라 기록되어 있고 역시 허리라는 말이다. 그러나 사전을 찾아보니 두 번째 뜻으로 “생식 능력”을 의미하고 영어로 Semen을 의미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말을 따라 번역하면 “네가 아직 조상의 Semen속에 있을 때”가 된다. DNA 같은 것을 안 들먹여도 알듯하다. 아담이란 이름의 고유명사 말고 그 뜻 속에 있는 “사람”이란 의미대로 우리 전체 인간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을 퍼뜩 깨닫게 되었다. 우리 모두가 아담의 몸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아담과 함께 범죄 한 것이 된다.

구약 창세기 35:11에는 같은 뜻으로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라고 기록 된 구절이 있다. 히브리어로 Chalats(or Halatz)는 헬라어와 같은 의미의 허리이다. 구약의 용법도 신약과 같다.

그렇게 보니 “예수님과 함께”라는 것은 바로 같은 의미로 “두 번째 아담” 즉, 예수님 속에 있게 되는 인간 전체를 의미하게 된다.

교부들이 한 이야기를 보면 비슷한 글이 있다.

성 어그스틴이 인용한 글에 보면, Milan의 감독이었든 성 Ambrose(340?-397)는 다음 같이 말하였다. “아담의 자유의지는 우리의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아담 속에 있었다.”

카토릭 교회의 가장 큰 중세의 교부, 성 Thomas Aquinas(1225-1274)는 다음 같은 뜻의 말을 하였다. 인간은 개인 개인이 사회의 일원이다. 개인적인 자유의지는 그렇지 않다 하여도 사회가 그렇게 하면 다 같이 한 일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나 사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원이 되고, 이 사회 그 자체가 한 사람인 것과 같다. 그래서 아담으로부터 받은 인간성을 한 사회로 생각하면 우리는 곧 아담의 일원이다.




다른 문제는 예수님이 만약 우리와 같은 혈통의 인간이라면 예수님도 아담의 씨 밖에 되지 않는다. 바로 로마서의 기록대로 판단하면 예수님도 죄인일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자기도 죄인이면서 다른 죄인을 대신 하여 죽음으로 속죄 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바울의 말 대로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었다. 예수님은 아담의 씨가 아니라 자신이 새로운 아담이셨다.

옳은 유추인지는 모르지만 여기에서 왜 예수님께서 육신적으로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나지 않아야 할지를 알게 된다. 하나님의 뜻은 더 오묘하고 온전하여서 이 보다 더 오묘한 뜻이 있겠지만 내가 더듬어 깨달은 것은 그 정도다. 이 때문에 예수님이 왜 성령으로 사람이 관여 안한 처녀에게서 나야 하는 지도 설명하게 된다.


나는 로마서를 어려워서 잘 모른다. 그러나, 몇 년 전에 마틴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론을 보다가 이건 정말 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를 알게 하는 것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은 어떤 성경도 로마서라는 안경을 통해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어떤 의심스러운 구절도 로마서에서 최종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실제 위에 쓴 글의 모든 해답은 로마서에 있다.

또 동정녀 탄생에 관한 것을 말씀하시는 많은 분들이 성경에 그렇게 예언 되어 있음으로 그 예언을 이루려고 그렇게 되었다고 하신다. 사실이다.

문제 되는 몇 개의 성경 말씀을 보겠다.

첫째 말씀은 이사야 7:14 말씀이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처녀란 Alma란 히브리어이고 헬라어로는 neanis로 번역된다. 사전에 보면 결혼 적령기의 여자 혹은 최근 결혼한 배우자로 동녀의 의미가 아니다. 같은 뜻으로 창 24:43, 출 2:8 등에 사용되고 있다. 실제 70인역에는 parthenos(동정녀)라고 잘못 번역되어 있다고 한다. 성경에 동정녀는 Bethura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창 24:16, 삼하 13:2, 신 22:23,28에 이 단어가 사용되어 있다.

사실 초대교회 때의 많은 비 기독교도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이 사 7:14을 잘못 번역하고 해석한 것이라고 반박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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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부들은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각기 서로 의논하지 않고 번역하고 대조한 결과가 모두 똑 같았다고 자랑하는 70인역이 잘못 되었다면 너희 조상들이 잘못한 것이란 말이냐고 도로 공격하였다.
재미 있는 사실은 그들의 70인역(LXX)에 동정녀로 번역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애굽이 아렉산더 대왕에게 정복 당하고 그가 죽은 후 애굽을 차지한 헬라 왕조의 Ptolemy Philadelphus가 처음으로 아렉산드리아에 지은 큰 도서관에 책을 모으면서 헬라어와 히브리어에 능통한 72인의 유대인을 초청하여 72일(?) 동안에 헬라어로 구약을 번역 했다는 것이 70인 역이다. 이 때는 주전 250년으로 물론 예수님 오시기 전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번역시 그 원 뜻에 더 가깝게 전체 뜻을 생각하고 그들이 번역하다 보니 그렇게 번역 되었고, 한편 하나님이 그렇게 관여하신 것이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되어 진다.

두 번째는 창3:15의 말씀으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 이 구절인데 원어에는 여인의 후손(-He)인 남아가 (예수를 상징) 뱀의 머리를 상한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성 Jerome이 처음으로 라틴어로 번역한 카토릭의Vulgate역에는 He가 아닌She가 주어가 되어 있다고 한다. 이 차이는 크다. 여자가 주어 일 때는 아들을 통하여 여자가 뱀의 머리를 밟는 것이 되고, 예수가 아닌 성모가 이기는 것이 된다.

셌째는 마1:25에 첫 “아들을 낳기 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란 말을 보면 아들을 낳은 후는 동침하였다는 말이 되나 초대교회 때부터 예수 출산 후도 평생 독신으로 지나고 남편과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성모 숭배 사상은 제법 오래되었다. 또 카도릭에서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만들기 위하여 만든 교리가 있다.

중세기 때부터 성모의 무죄 잉태설 (Mary Immaculate)이 나오고 찬 반 양론으로 시끄러워지자 교황이 나서서 그 문제를 말하지 말라고 까지 교시하였다. (Gregory V는 1622년에 absolute silence를 명하고, 1661년에 Alexander VII는 모든 토론을 금지 하기를 명하였다.) 또 유명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도 이 문제는 반대 하였다. 그러나 1854년 12월 8일에 교황 Pius IX는 성모의 무죄 잉태설을 선포하였다. 성모는 잉태 될 때에 우리가 세례로 죄가 사해져서 무죄가 되듯이 하나님이 한번 뿐인 특별한 은총으로 모든 유전적인 죄에서 면죄되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카도릭은 성모 무죄 잉태설과 평생 처녀설을, 동방교회는 요셉의 전처와 그들의 자손들이 있었고 예수가 막네이었음을, 그리고 일반 신교도들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그 후 동생들이 마리아에게서 태어 났음을 주장한다.

끝으로 한 초대교회 교부의 글을 소개하겠다.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의 복음서(위경)에 근거하여 혹은 야고보의 책 (위경.. Protoevangelium of James)에 따라서 예수의 형제들은 마리아가 결혼한 요셉의 전처 자식들이라 한다. 이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마리아의 명예와 처녀성을 그 몸과 함께 끝까지 지키려 하고….성령이 그녀에게 임하고, 높은 대서 오는 능력에 잡힌 뒤에 사람과 관계를 가진다는 것이 명예를 가리우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예수가 사람 가운데서 순결로 이루어진 청결의 첫 열매이고 마리아는 여자 중에서 그렇다는 것이 타당하다 생각된다. 그녀에게 있어서 처녀의 첫 열매라고 말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신앙 깊은 행동이 아니다. (c. 245 Orig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