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라로 된 야곱


10여년 전에 한번 귀국하였을 때 고속도로와 도시화 과정에서 없어진 선산에서, 이장한 조상들의 묘지에 성묘를 갔었다. 경산과 청도 사이의 높은 산 위에 있는 공원묘지의 한편에 기독교인들을 위한 묘소가 따로 있었다. 잘 닦아진 도로는 산 중턱 위에 까지 올라 갔다. 파킹장에서 내려서 한참을 올라간 자리에 우리 가족 묘소가 있었다. 묘지는 왼편의 4대조부터 마지막의 부모님 묘소까지 있고 오른편으로 조그만 한 빈 자리가 따로 있었다.

한 줄기 구름이 발 밑 산중턱에 걸려 있고, 오후의 햇빛은 봉우리들을 넘어 멀리 까지 사선으로 비추고 있었다. 주위에는 간혹 들리는 벌래 소리 외에는 더 없이 조용하였다. 나는 풀 위에 앉아서 내가 돌아 올 자리가 여기일가? 그리고 내가 죽은 후, 어디에 내 몸은 놓여지게 될 것인가?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 성경 말씀은 야곱과 요셉의 장사 기록이다.

"그 수종 의사에게 명하여 향 재료로 아비의 몸에 넣게 하매 의사가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사십일이 걸렸으니 향 재료를 넣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창 50:2-3)

"요셉이 일백 십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창 50:26)

유대인들의 풍속에 의하면 지금도 그렇지만 사람이 죽으면 당일(24시간)에 장사 지내고 (신명기 21:23) 늦어도 3일을 지나지 말라고 되어 있다. 또한 사체를 장의사에서와 같이 피를 뽑고 처리하는 것이나 사후 시체 해부를 지금도 가능하면 금하고 있다.

사체는 굳어지기 전에 6 묶음으로 동이고 입, 코, 귀, 항문 등을 솜으로 막고 베로서 감았다. 흔히 관을 사용하지 않으나 관을 사용 시에는 밑으로 많은 구명을 뚫었다. 무덤은 석회나 사암의 굴로서 사람이 누울 정도의 돌상 위에 놓게 되어있다. 화장(火葬)은 하지 않는다. 최근 까지도 장기 이식을 위한 사체의 장기 제거는 주저하였으나 지금은 일반적으로 받아드리고 있다.

물론 안식일과 욤 키풀에는 장사를 피하여야 하며 다음날 행한다.

이런 일반적인 유대인 풍속을 알고 있는 사람이 창세기 50장의 야곱과 요셉의 장사를 기록한 장면을 보면 완전히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된다. 여기 기록은 그들의 관습대로 야곱과 요셉을 처리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조상 아브라함이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서 산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 지내려 가기 위하여서는 장시간이 소요됨으로 특별한 장사를 한 듯 하다.


소련의 지도자 레닌이 죽었을 때에 지도자들과 노동자들은 그를 영구하게 산 사람 같이 보존하기를 원하였다. 처음은 저온에서 보존하였으나 3주일 정도 후에는 부패하기 시작하여서 의사들에게 의뢰하여서 약품으로 처리하여 지금같이 깨끗하게 보존되고 있다. 지금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때때로 약품 속에 넣어 처리하여야 한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의과대학 시체실에서 보존용으로 사용하는 포름 알데하이드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포르마린이 주는 심한 탈수 현상으로 인하여 시체 피부에 주름이 오고 변형되는데 이를 방지하고 자연스러운 피부로 보이게 하기 위하여 과산화 수소를 보탠다고 알고 있다. 물론 모택동 사체도 같은 방법으로 보존하고 있다. 김일성이도.....?

3-4천년 전 일이다. 애굽에서 그들의 가장 존경하든 총리의 부친과 총리 자신이 죽었다. 그리고 더운 지방이라서, 묘소까지 갈 오랜 기간 걸릴 시체의 운구가 문제가 되었을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당시의 사체 처리 기술이 최고로 발전하였든 애굽의 미이라를 만드는 기술이 여기에 사용되었을 것은 확실하다.

애굽의 미이라를 만드는 방법은 헬라의 역사가 Herodotus가 주전 450년경에 기록한 것이 있다. 애굽인들은 BC 5000년 경부터 뜨거운 모래 속에서 죽은 사람들이 미이라로 된 것을 보고 미이라를 만들기 위하여 시체를 뜨거운 모래 속에 묻었다. 이것은 사람의 몸의 75%가 수분임으로 수분을 제거하면 부패를 방지한다는 간단한 원리이다. 물론 탈수된 미이라는 원래 몸 체중의 4분의 1로 바뀐다.

그들이 죽은 사람을 미이라로 만들기로 결정하면 사람이 죽은 후 직시 Ibu라고 하는 정결하게 하는 천막으로 옮기고 물로 닦고 Natron 이라고 하는 정결제를 사용하여 처리하였다. 주전 50년경의 헬라 학자 Diodorus Siculus는 그의 기록에서 미이라 만들 때 중요한 것은 수분이 많은 내장을 이 때 제거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내장은 보통 좌측 복부를 절개하여 내장들을 제거하였다. 복강은 야자 기름으로 씻어 낸 다음 향료 몰약 계피 등으로 처리하고 Natron으로 채웠다. 뇌는 비강을(코) 통하여 두개골 중에서 가장 얇고 연한 뼈인 Ethmoid bone을 뚫어서 뇌수를 제거하고 Natron을 채웠다. 이 방법은 놀랍게도 현대적인 뇌하수체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법과 똑 같다. 그러나 그 당시는 뇌의 작용을 잘 몰라서 뇌는 제거하였으나, 우리의 혼이 심장에 있다고 믿어서 심장은 다치지 않았고 혹시 제거 후에도 다시 넣었다. 이 같은 것들은 최근 미이라의 X선 혹은 MRI 촬영 검사법으로 확인되고 있다.

Natron이란 자연적으로 카이로의 40마일 서북편에 있는 Wadi Natrum (나트륨 乾川)의 삼각주 땅바닥을 덮은 소금으로 주된 성분은 Sodium Carbonate, Sodium Sulphate, Sodium Chloride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Natron이라는 단어에서 Natrium이란 화학명이 나왔다고 한다. 사체를 이 Natron으로 채우고 이 속에 묻어두면 빠른 탈수 현상이 일어나서 미이라로 바뀐다고 한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Natron으로 처리한 후 35일이 지나면 완전한 미이라 모습으로 되지는 않았으나 아직도 관절이 굳어지지 않아서 베로 둘러 감을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40일이 지나면 너무 굳어져서 처리하기 곤란하였다 한다. 옛날의 Herodotus에 의하면 이 처리기간이 70일간 걸린다고 하였으나 이는 잘못 이해한 듯하다. 70일간은 모든 장례 기간을 말하는 것으로 최근 학자들은 알고 있다. 또한 성경의 기록도 그러하다.

일단 이 처리가 끝나면 송진 같은 수지에 처리 된 베, 향료, 이끼, 진흙, 양파, 때로 톱밥 등으로 사체를 체웠고 피부는 밀랍, Juniper기름, 향료, Natron, 우유, 포도주 등으로 된 기름을 발랐다. 그리고 수지와 베로 감았다. 이같이 처리 된 미이라는 몇 천년 동안도 변함없이 보관되고 있다. (Christine El Mahdy; Mummies Myth and Magic. 1998)

약 1개월 전에도 카이로 근처의 한 지역에서 5000년이 지난 미이라를 발견하였다는 뉴스를 본 일이 있다.

이런 내용들을 살펴보면 몇 천년 전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의 정확성이 다시 놀랍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