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ssion of the Christ|♤이상국의 신앙이야기
이 상 국 |  | 04.04.24 10:57 

지난 월요일은 유대인들의 유월절이고 오는 주일날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부활절이다.


한편 지금은 유대인들의 유월절 기간의 한 중간이다. 지난 월요일이 유월절의 첫날이었다. 그러니 다음 월요일이 마지막 날이 된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중에서 첫날과 마지막 날을 중시하여서 거룩하게 지킨다. 그러나 전에도 말한 일이 있지만 해외의 유대인(디아스포라)들은 시간적으로 정확히 성 일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을 생각하여 보통 하루 대신 2일간을 지킨다.

8일간의 기간 중 첫 2일과 마지막 2일을 뺀 4일 간은 그들에게는 “공휴일”로 그들 축제를 말 그대로 즐긴다. 보통 운동 경기들과 쇼 등을 관람하고 가족끼리 그들의 뜻 깊은 구원의 날들을 기쁘게 지나기 위하여 노력한다.

신문에 보도된 것에 의하면 금년에는 뉴저지에서 한 랍비가 큰 운동장을 빌려서 거대한 서크스단을 초청하여 유대인 가족들이 인간적인 즐거움도 이 기간 동안 즐기게 하고 있다.


우리가 믿음의 모델로서 구약의 유대 민족의 수난과 유월절의 구원, 홍해의 세례를 생각한다면, 우리 부활절 기간도 유대 풍습에서 새로운 것을 생각 해보게 한다.

우리에게도 같은 경험이 신앙적으로 있었다면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통한 구원의 모형을 유대인들에게서 볼 수 있을듯하다. 정말로 우리들이 지키는 부활의 거룩한 면 말고, 다시 살아 난 기쁨을 생활 속에서 즐기려고 노력하는가?

전통적으로 초대교회에서는 주의 날을 안식일로서가 아니라 주님이 부활하신 날로서 기쁨으로 지키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나 교회가 조직화 되면서 무거운 유대교의 안식일 사상을 도입하여 짐이 되게 하였다. 일년에 한번 지키는 유월절식 부활절이 아니라 우리는 매 주일을 즐거움으로 부활을 축하하여야 한다. 구약식의 안식일을 지키려면 토요일을 지키는 것이 옳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하여 자유로워졌다.

기독교의 중심은 부활이다. 우리에게 부활신앙이 없다면 바울의 말대로 우리가 가장 불상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부활을 위하여 모든 것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부활은 고난을 통하여서만 얻을 수 있다.



얼마 전에, 우리집 사람이 6시간 걸려 척추 4개를 일부 뜯어 내고 고정하는 긴 수술을 하였다. 오랜 회복기를 지나 이제 겨우 혼자 몸을 움직이고 출입을 시작하였다. 다행스럽게 이제 간혹 나를 야단치기 까지 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지난 한달 넘게 잘도 참고 노력하였다. 수난 주간 동안에 차도 있는 회복을 마지 하면서 주님께 감사 드린다. 그리고 부활의 즐거움의 일부분이라도 우리 생활을 통하여 체험하게 하심을 감사 드린다.

“부활주일 전에 ‘그리스도의 수난’을 보았으면..” 집 사람이 며칠째 원하고 있다.


우리 가족들은 사순절 기간 동안 투병하는 엄마를 위하여 아무도 멜 깁슨의 감동적인 영화를 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유대인 동료들은 오늘도 “맬 깁슨의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유대인들은 이 영화에 대하여 너무 과민하다. ----옛날 부터 그들은 예수나 그리스도(메시아)란 말을 하기를 즐기지 않는다. 그들의 탈묻에도 여호수아(예수), 미리암(마리아) 란 단어로 표시 하기를 주저하고 대명사로서 예수님을 지칭한 기록들을 모아둔 글을 본 일이 있다.----

그러나 나는 영화를 보지 않아서 정확하게 말을 할 수가 없다.

오늘은 성금요일이다. 카토릭에서는 전통적으로 오늘 미사에서는 신부님들의 강론은 예수님의 수난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십자가상의 7 말씀”이 주제가 된다. 그런데 보도에 의하면 대부분의 신부님들과 목사님들은 부활절 전후의 설교를 이 영화를 이야기의 시작으로 말하려고 계획하고 있다고 들 한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었다. 극단적인 예수 토착화 사상을 가진 분들외에는 다 인정하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유대 땅에서 태어났고 33년을 유대 땅에서 유대교의 계율을 지키면서 사셨다. 그는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명절이면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갔었다. 안식일이면 시나고그에(회당) 가셨고 그들 식으로 예배를 드렸다. 예수님은 전형적인 유대인이셨다.

그러나 2000년 동안 기독교는 예수를 죽인 유대인들을 핍박하여 왔다. 교회의 주신 예수를 죽인 유대인들에게 중세 교회는 악의를 갖고 유대인들을 박해, 살해하였다. 십자군 때도 그랬었고, 유대인 교인들을 심지어 교회에서 추방까지 하였다. 그 사상 위에서 근대의 히틀러는 수 백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 하였다. 교회는 유대인을 통하여 예수를 받았으면서도 예수의 동족을 살인자로만 취급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수난”이 일반 기독교인들에게 불러 일으킬지도 모를 반 유대 사상이 그들은 두려운 것이다. 유대인들의 과민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성경이 가장 정확한 해답이다.

주로 유대인들을 생각하여 기록된 공관 복음의 대체적인 해답은 유대인 중 공회원(산헤드린)들이 주체가 된 지도자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요한 복음의 기록은 훨씬 후일 유대 형편과 사상을 모르던 이방인이 주된 대상 이어서 공회원들 보다는 그냥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라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들은 이 유대인들을 일반 유대인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유대인들은 곧 장로와 서기관 공회 회원들이다. (누가 22:2, 마 26:3-5,마 27:1, 막 15:1, 요 18:12, 19:7-15)

유대인들이 유대인 예수를 죽였다. 그렇지만 또 다른 구석도 있다. 그들이 직접 죽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종교적인 이유로 유대인들에게 사형의 언도를 받으시지 아니하였다. 어떤 기록은 그 때는 어떤 사형도 로마 총독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함으로 공회의 종교 재판에서 사형을 시킬 수 없었다고 하나 나는 믿기 힘들다. 그들은 공회의 권력인 종교 재판에서 스데반과 같이 돌로 쳐 죽일 수 있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들은 많은 동정적인 예수 추종자들을 두려워 하여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돌려 정치적인 반역자의 죄명을 달아서 죽였다. 예수의 죽음에는 유대의 지도자들 뿐만 아니고 권력자들인 빌라도와 헤롯 안티파스가 그 뒤에 책임자로서 있게 된다. 그들은 예수님을 질투하였다. 여우 같은 헤롯은 일반 유대인들의 민심을 알고는 빌라도에게 최후의 칼자루를 쥐어 주었다.

고소자는 유대인이었으나 재판자와 집행자는 로마인으로 된다. 그런대도 로마의 후손인 그레꼬-로만들과 유럽인들 그리고 그 교회들은 로마의 죄를 희석하거나 외면하여 온듯하다. 교회는 예수의 토착화 사상과 유대인의 예수 죽임을 강조 함으로 예수에게서 유대인의 족보를 찬탈하였다. 반대로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유대인들은 예수를 “미친 사람”과 반역자로 그들 동족에서 쫓아 내었다. 그 분은 누울 자리도 머리 둘 곳도 없이 지나 오시게 되었다.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은 반 유대 사상이 생긴 것이 아니고 그들이 본 어떤 예수님 전기 기록의 영화 보다도 더 감동적이었고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고난 받으신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심지어 2-3회 이상 관람한 분들도 많다. 보도에서는 런던에서 온 한 사람은 일부러 영화를 미국에서 보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이유는 구라파에서는 너무 잔혹하고 “폭력적인” 영화라서 (?) 편집할 것이 틀림 없음으로 원본을 보기를 원하여서라고 한다.

실제 양심적인 많은 분들은 종교적인 느낌이 전부였지 폭력(?)은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처음 문제를 제기하였든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은 대부분이 유대인들이었고 멜 깁슨에게 자금을 대어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맬 깁슨은 자기 돈을 많이 투자하여 제작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어떤 예수님 전기 보다도 더 성경에 충실 할 수 있었다고 한다.어떻든 이 영화는 4월 9일 까지 전세계적으로 3억불 이상의 수입을 가져다 주었다.

몇일 전 뉴욕의 시장이었든 유대인 코취 시장은 유대인들의 과도한 주장에 대하여 근심을 표현하며, 어느 누구도 상대방의 종교에 대하여 깊이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가장 큰 미국의 단체가 남부 보수 교단들이며 영화는 이들이 주된 관람자고 또한 그들 교회들이 단체로 입장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란다고 하는 말을 방송하는 것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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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지고 Via Dolorosa (아픔의 거리) 를 가시던 예수님은 채찍질과 그 무게로 몇 번이나 넘어 지셨다고 한다. 기록에는 그 때 십자가들은 화려하고 잘 다듬어 진 것은 300 파운드( 136 Kg)나 되었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달리 셨든 일반적인 십자가는 75-125 파운드(34-56 Kg) 되는 것일 가능성이 많다. 나무를 취급하던 목수가 그것도 쉽게 지고 가기 힘들었을까?

최근의 고고학자들이 무덤의 크기 뼈들의 길이 등으로 연구한데 의하면 2000년 전 즘의 셈족들의 남자들은 평균 5.1인치(1m 55cm) 였다. 그리고 몸 무게는 평균 110파운드(50Kg) 였다고 한다. 성경의 일관된 표현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이 6척 장신에 노랑머리, 파란 눈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반 아랍인들 같이 약간 검은 피부에 지금으로 보면 자그마한 몸집에 검은 수염이 얼굴을 덮은 그런 모습일 가능성이 많다. 이 시골 마을의 목수는 손이 상대적으로 크고 상처 투성이었을 것이다.

너무 폭력적인 영화라고 유대인들이 말하는 채찍질은 독특한 매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어릴 때 이웃의 일본인 순경들이 사용한 “소좃매”라는 황소의 생식기로 만든 매가 항상 벽에 걸려 있든 것을 본 기억이 아직도 있다. 예수님을 치셨든 매는 꼬아 만든 두꺼운 가죽 끝 부분에 짐승의 뼈나, 쇠 조각들을 붙인 것이었다고 한다. 사람을 치면 가죽과 살점이 떨어져 나오는 기구였다. 그가 당한 매질로 그의 왼 몸은 피투성이로 비교적 많은 출혈을 하였을 것이고, 예수님은 12시간을 물도 한 모금 자시지 못하였다. 그는 목이 마르셨고 그의 탈진 상태에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셨을 가능성이 높다.

십자가에서는 세 개의 못으로, 우리가 어릴 때 본 대장간에서 쳐서 만든 모가 난 크다란 못으로 발과 양손에 박혔을 것이다. 손바닥에 못이 박히면 손이 찢어져서 몸 무게를 감당 할 수 없음으로 아마 손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무릎을 굽힌 상태로 양 발을 관통하는 긴 하나의 못으로 발은 못이 박혔을 것이다.

십자가 상에서는 두 가지 이유로 죽음이 올 수 있다. 첫째는 탈수 현상이다. 못으로 인한 출혈은 곧 멎어버린다. 그러나 마시지 못하고 일부나마 흘린 피로서는 죽음 까지 수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안식일이 되자 다른 죄수들은 다리를 뿌려 뜨려 서 (아마 크다란 망치로 뼈를 십자가 위에서 쳐서) 더 큰 출혈을 주어서 죽음을 재촉 하였다고 한다.

두 번째 가능성은 질식사이다. 무릎을 굽히지 않고 팔을 벌리고 한껏 당겨서 십자가에 매어 달리면 가슴이 당겨서 정상적인 호흡이 불가능 하다고 한다. 그러나 무릎을 약간 굽히면 호흡 때마다 무릎을 펴고 굽히면서 호흡이 가능 하다고 한 최근 기록을 본 일이 있다. 시간이 가면 차차 탈진을 하여 무릎을 굽히지 못하고 결과로 호흡을 못하고 질식 한다고 한다.

예수님은 목이 마르셨고 크게 고함을 하여야 하실 정도로 숨 쉬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연약한 어깨에 내가 매어 달려 있었다.

정말 너무 잔인하다. 그만하자.

.......예수님은 내가 죽였다.

내일은 시간을 내어 우리 집 사람을 모시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보아야 겠다.


고난을 넘어 이루어 진 부활의 기쁨이 교회와 각 가정에 넘치시기를 바라며 참된 구원의 기쁨이 생활 속에서 나타나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