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neuma


다행스럽게도 한국에서는 발병한 분이 한 사람도 보고된 것이 없지만 지금 아시아에선 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 라는 강한 전염병이 퍼지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2003년 3월 25일까지 보고 된 환자가 487명이고 전체15개국에서 발병한 환자 중에서 사망한 환자가 22명이라 한다. 홍콩에서는 지난 2월부터 중국 본토에서 온 한 교수가 있었든 호텔로부터 시작된 SARS는 3월 25일 까지 286명이 발병하였다. 24일에는 심지어 홍콩 정부 최 고위 보건 책임자인 의사까지 감염되었다.


증상은 감기 같이 시작하지만 독감 같이 고열과 근육통 두통이 심하다. 특히 호흡기 계통의 감염 증상이 심하다. 차차 호흡곤란이 있으며 폐렴이 되고 사망한다. 사망률은 아주 높은 편은 아니라고 하여도 높은 편이다.


위에 말한 사망을 갖어 오는 폐렴은 공기 주머니에 오는 염증으로 의학 용어로 Pneumonia라고 한다. 어간인 Pneuma란 공기를 의미한다. 성경에도 공기를 말하는 부분이 많고 또 중요한 뜻을 갖고 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요 3:8)

여기서 바람이라고 한국어에서 번역된 것이 내가 본 영어 성경에서는 성령(Spirit)으로 번역되어 있다. 바람이란 단어는 헬라 원어에서는 Pneuma로 기록되어 있다. 알다시피 Pneumatic pump(공기펌프)란 말도 있고, 위에 장황하게 설명한 Pneumonia도 있다. 우리가 성령으로 번역한 많은 성경 단어들이 희랍 원어로는 Pneuma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한글 번역과 영역이 모두 옳은 것 같다. 즉 예수님은 한 단어로 두 가지의 뜻을 함께 말씀 하셨다.

구약에서 바람은 루아흐 (Ruach)란 히브리어로 기록되고 그 뜻은 그리스어와 같다. 구약의 저자들은 하나님을 바람으로 표현하는 데는 매우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홍해를 갈라놓은 바람은 (출 14:21) 구속 자이고 강력한 하나님과 같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아라비아의 동풍인 모래바람은(Sirocco)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사 40:7)에서와 같이 파괴자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같은 뜻으로 여호와는 사람의 자랑을 파괴하실 수 있다. (시103:15-18, 렘 4:11) 지금 바벨론 옛터에서 모래바람 속을 해치며 움직이는 미 영 연합군들이 전번 전쟁을 왜 “Desert Storm”이라 한 것인지 그 일부라도 짐작할만하다.

그렇지만 때가 바뀌어 서풍이 부는 우기가 되면 습기 품은 지중해의 바람은 하루아침에 땅을 새롭게 하고 푸른 풀과 꽃들로 덮이게 한다. (호 6:3) 그같이 하나님의 숨결은 생령을 (창 2:7) 창조하셨고 마른 뼈들도 살아나게 하실 수 있다. (겔 37:9-10) 하나님은 생명의 영이시다. (요 4:24) 그럼으로 성령이란 곧 공기와 같다.

공기의 이동인 바람이 불어도 바람은 볼 수 없지만 바람이 흔들고 간 나무 가지를 보고 공기의 움직임을 안다. 그 같이 성령의 역사도 성령님을 못 본다고 하여도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우리는 공기 속에 살지만 그 공기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또 공기는 우리 속에 들어가서 폐에서 혈액을 통해 우리 몸의 세포 하나 하나에게 생명인 공기를 공급하지만 이를 느낄 수 없다. 그렇지만 공기가 없으면 그 세포는 죽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찬의 삶이란 곧 Pneuma 안의 삶을 말한다. 그것은 또 "내 인생을 사는 것"과 같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일이 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알리라." (요 14:20) 물리학적으로는 불가능한 듯한 이 말씀이 Pneuma란 단어를 알면 쉽게 이해되어진다. 공기 속에 있는 우리, 우리 속에 있는 공기를 생각 해 보라.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이란 바로 이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바울은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안이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산것이라". (갈 2:20)라고 하였고 또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고전 1:30)라고 기록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이 될 수 있는 이 오묘한 진리를 바울은 En Xristo (그리스도 안에)란 단어로 표시하고 있다. 이 "그리스도 안에"란 단어는 바울 서신 가운데 164회나 나타난다.(Adolf Deissman; The Christ -Mystic 1925)

"바울의 신비주의적인 근본 입장은 다음 같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 안에서 내 자신이 감각적이고, 죄 많으며, 무상한 세상에서 들리어 올려진, 그리고 이미 초월적인 존재가 되었음을 아는 것이다." (Albert Schweitzer; Eschatological Mystic. 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