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1. 안식일의 기억 내 젊은 날의 기억으로는 우리 집은 좀 완고한 일요 안식 주의를 지킨 듯 하다. 물론 일요일 여행을 금하였고, 그러니 뻐스 비를 얻을 수 없었고, 대부분의 그 때의 교인들 같이 주일 날 물건을 사고 팔 수가 없었다. 의예과 2학년 기말 고사가 있을 때 주일 날 공부를 할 수가 없어서 열심히 기다리다가 밤 12시가 지나서야 시험 준비를 하였다. 덕택에 이튿날 위경련이 나서 시험을 못 치르게 되었다. 의예과 부장이시든 김 교수님께서, 다음 날 가니까, 과후에 종이를 한 장 주시면서 봐 줄 테니까 칠판에 적은 시험 문제 답을 써내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봐 주시는..."까지 생각한 것은 좋았는데 교수님이 나가시자 문밖에서 기다리든 친구들이 가담하여 책을 펴놓고 "칸닝구"로 바쁘게 베끼고 있었다. 그때 들어오신 교수님이 "난 이 군은 그렇지 않았을 줄 알았는데 2년이나 같이 지낸 자네도 믿을 수 없군..." 너무 부끄러워서 백지 답안지를 그날 내었다. 바른 말을 하면, 물론 속으로 가만히 계산 해 보니 그 시험에 0점을 먹어도 낙제는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 첫 아이가 태어난 후 시골에 갔을 때 얘 엄마가 그 전날 아이 "궁긋질" 할 과자를 준비 못하고서 살짝 골목 앞 상점에 과자를 사러 갔다가 아버님께 들켜서 혼이 난 일이 있었다. 이 일은 남들에게 자랑삼아 얼마나 우리가 보수주의적으로 예수를 믿었는가를 이야기 할 때 아직도 두고두고 우리 집 사람이 예를 드는 이야기이다. 1971년부터 1973년 도미 때까지 나는 안식교 병원인 "서울 위생병원"에서 3년간 외과 과장으로 있었다. 그때 나는 많은 안식교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기회가 있으면 안식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지만 그들은 나를 "일요 교인"이라며 토요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들 말이 그 문제에 국한한다면 옳다고 느껴졌다. 이때부터 선입관 없는 안식일 문제를 생각하게되고 오랜 동안 이 문제는 내 가슴에 숙제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안식일이란 무엇인가? 주의 날은 또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가를 항상 생각하게 하였다. 다음은 이 해답을 일부 정리한 것이다. 2. 안식일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막2:27)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데로 안식일은 성일 중에도 성일 이다. 거룩하다는 것은 옛날부터 구별을 의미하였다. 이 날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만 있는 것이란 생각에 길 들여진 우리에겐 바로 알기가 두려운 말씀이다. 구약 성경에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말고 쉬라고 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일은 첫째 밭 갈고 거두는 것 (출 34:21)과 둘째는 불피우는 것(출 35:3)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미쉬나에는 39가지 항목을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전기 기구들도 불로 취급하고 있다. 그래서 안식일 날 유대인 병원에는 손으로 하지 않아도 각층마다 서고 열리고 닫혀지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뉴욕 부르크린에 많이 거주하고 있는 하시딕 쥬 같은 보수 유대인들은 개인 집에서는 안식일에 불을 켤 수 없음으로 이웃의 비 유대인 아이들에게 부탁하여 안식일 날 불을 켜고 끄게 하고 있다. 이를 Shabbes goy라고 한다. 또 불이 없음으로 음식 장만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안식일 음식은 안식일 시작하기 전에 다 장만하여 둔다. 해 지는 순간부터 하루가 시작한다는 유대인들의 방식에 따라 안식일은 금요일 해 질 때 시작하고 토요일 해 찔 때 끝난다. 그렇지만 안식일은 이런 규제들 보다 더 중요한 즐거움이 있다. 현대에는 보수 유대인들도 일부는 구기, 수영, 댄스등은 허락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 풀장에서 수영중 물이 넘치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된다는 기록을 보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안식일은 즐거운 날로서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같이 먹고, 함께 놀고, 함께 공부하고 함께 즐기는 날이다. 가장 좋은 안식일 옷, 구두, 모자 등을 입고 쓰고 회당에 가며, 여자들이 1주일 동안 준비한 가장 좋은 음식을 먹고 즐기는 것이다. 거룩한 안식일로만 아는 우리는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안식일이 시작하는 금요일 밤은 부부가 잠자리를 함께 하는 날이라는 기록도 보았다. 유대인들의 옛 이야기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토라(율법-모세 오경)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드리고 이를 준수하면 내가 너희에게 가장 귀중한 선물을 받게 하겠다"고 하셨다. 이스라엘이 "가장 귀중한 선물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그것은 다가오는 새로운 세상이다" 하였다. "다가오는 새 세상은 어떤 것입니까?"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미 안식일을 주었지 않았느냐, 안식일은 다가올 세상과 같은 맛이다." (안식일 같이 좋은 것이다)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유대인들에게 실제 안식일은 즐거운 날이다. 한번은 유명한 랍비 Akiba가 안식일 날 혼자 앉아서 우는 것을 본 제자가 "선생님 어떻게 안식일 날 우십니까? 안식일은 즐겨야만 할 날이지 않습니까?" 고 물었다. 랍비는 눈물을 씻으면서 대답하기를 "이(우는) 것이 곧 나의 즐거움이다" 예수님 당시의 교조주의적인 사람을 얽매는 형식적인 안식일 법을 예수님은 옳지 않게 생각하셨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지 사람이 여기에 얽매이게 하기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3. 주의 날 (주일날) 안식일을 현재는 일요일 즉 주일 날로 기독교인들은 생각하고 구약의 안식일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지만 초대교회 때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도 유대인들이 가장 엄격하게 지키고 있는 안식일 법과 정결법 중에서 음식등 정결에 관한 것들은 할례와 함께 우리는 일체 지키지 않으나 안식일법의 교조주의적인 면은 주의 날에 지키고 있다. 하긴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 바로 자신이라고 하셨음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본 뜻은 잊어버리고 후일에 점차 주의 날을 안식일로 생각하게 된 듯하다.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 잘 못이 아니라 안식일을 "지키는 행위"를 유대인이나 중세의 카도릭 같이 중시하는 것이 잘못이 아닐까?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이다. 근대의 주일을 안식일로 강조하게 된 것은 종교 개혁 이후로 신교도 일요 안식주의자들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특히 미국에 이주한 청교도들은 이를 강조하였다. 미국에서는 철저한 일요 안식주의자에 의하여 안식일 성수를 위한 Blue law라는 법률이 뉴 잉그랜드 지역에서 시작하여 제정되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 강제규정이 대법원 판결 이후 폐지되었다. 그러나 현재도 보수주의가 강한 일부 지역에서 아직도 실제 이 풍습이 살아있다. 이렇게 안식일을 강조를 하다가 보니까 어떤 사람들은 성경 어디에도 없는 일요일 안식일이 율법에 어긋남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요일=안식일 주의에 반대하여 유대인 같이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는 제 칠일 안식교, 안식일 침례교회, 안식일 감리교회 등이 19세기 후반서 20세기 초반에 미국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이들은 초대교회의 주일이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목적이었든 것은 잊어버리게 되었고 안식일 엄수주의만 남게 되었다. 초대교회에서는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가 끝난 즐거움으로 축하하는 날이고 주의 날은 안식일과 틀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주의 날은 금식이나 무릎 꿇고 앉는 기도조차도 불법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주의 날은 안식일로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 부활의 즐거움으로 지키는 전통이 있었다. 신약 성서에 몇 곳 나오는 일요 집회의 이야기 보다 니케아 이전의 초대교회 교부들과 교회의 가르침을 기록하여 본다. "그러나, 주의 날마다 여러분은 같이 모여서 떡을 때어 나누며, 당신들의 죄를 자복함을 감사하며 당신들의 순결한 성찬이 되게 하십시오" (Didache c. 80-140) "이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며, 주의 날을 지키는 삶을 살고 있다." (Ignatius, c.105) "또 일요일이라고 불리는 날에 시내와 시골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서 사도들의 글과 예언서를 읽고.... 일요일은 우리들의 일반 집회가 열리는 날로 지킨다. 이 날은 하나님의 창조가 시작한 첫날....세상이 만들어진 날인 때문이다. 또한 이 날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부활하신 때문이다. (Justin Martyr, c.160) "복음서에 의한 율법의 완성을 위하여, 사람이 주의 날을 지켜야 한다....그가 악한 성품을 버렸을 때 영적인 사람의 성품을 취하게 되며 그 자신 속에 주님의 부활을 영광스럽게 한다." (Clement of Alexandria, (c. 195) "우리는 주의 날에 금식을 하거나, 예배 시에 무릎 꿇는 것은 법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날을 부활절서 오순절까지 같이 즐겁게 지켜야만 한다." (Tertullian c. 211) "우리들은 주일을 즐거운 날로 기념한다. 이 날은 주님이 다시 사신 날이다. 우리들은 이 날은 무릎도 꿇지 말라는 관습을 가르침 받았다." (Peter of Alexandria c. 310) "주의 날에 금식하는 사람은 범죄를 하는 것이다. 이 날은 부활의 날이다." (Apostolic Constitution, c. 390) "만약 어떤 성직자가 단 하루 외에 (부활절 전날 토요일), 안식일 날 (토요일)이나 주의 날에 금식을 하는 것이 발견된다면 그의 성직을 박탈하여야 한다. 만약 그 사람이 평교인이라면 치리를 하여야한다." (Apostolic Constitution, c.390) 위의 글들을 보면 초대교회 때부터 주의 날을 기독교인들은 성일로 지켜왔고 바울 때나 주후 1세기경에는 아직도 안식일도 주의 날과 함께 지키기도 하였든 것 같다. 그러나 안식일과 주일날은 뜻이 오늘날과는 다른 것이 확실하다. 우리 주님은 형식 보다 안식의 참뜻을 우리에게 알게 되기를 원하셨다. 오늘 날 우리들은 "즐겁게 안식 할 날..."을 반은 힘 빠지고 울고 싶은 모습으로 찬양하고 있을 때가 많다. 주일은 감사로 채워지고 기쁨으로 지켜야한다. 울거나 슬퍼하거나 내 인생을 한탄하는 날이 아니라 주님 속에서 함께 부활에 동참함을 감사하고 찬양을 하는 날인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는 이제 일년에 한번이 아니라 매 주일 마다 우리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집회를 가진다"는 글을 읽은 일이 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그 날에 매여서 고통받기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라는 주님의 말씀이 가슴을 친다. |